호주여행

워킹홀리데이로 호주를 가다 16

정다소 2024. 7. 21. 17:55

 

밀두라에 다녀온 후 바로 공장에서 일 할 수 있었고 한동안 공장에 다니면서 일을 했다.

그런데 약 2주 후에 공장일이 또 끝나고 며칠 쉬는 중에 S가 일하던 양말가게에 같이 일하던 사람이 일을 그만 뒀다. 그래서 내가 그 일자리를 대신 맡게 되었다.

내 생일이기도 한 2004년 4월 2일. 양말가게에 첫 출근을 했다. S가 화,수,목,금요일을 일하고 토,일,월요일에는 내가 일을 했다. 그래서 주중에는 Free School에 다녔는데, 얼마 후에 다시 공장일이 시작되어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공장에서 일을 하고 토요일부터 월요일에는 양말 파는 일을 하게 되었다. 갑자기 일복이 터진것이다.

양말가게는 Broadmeadows 역 근처 쇼핑몰 안에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복도에 위치한 가게에서 일을 했고, 물건 파는데 쓰이는 영어는 웬만큼 자연스럽게 쓸 수 있게 되었다. 능청스럽게 싸고 좋다며 설명도 하고 3개 값을 내면 4개를  주니까 사가라며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서 좋았다. 

정리하고 개수를 파악하는 일은 별로였지만 양말 파는 일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시간당 8$ 이었고 10시간을 일했다. 어차피 주말엔 공장에서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잘된 일이었고 나는 좀 더 통장의 잔고를 늘릴 수 있었다.

 

정말 운 좋게도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어서 행복한 마음으로 일을 했다. 공장일도 단순한 것에서 좀 더 업그레이드 된 다양한 작업들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양말 파는 일도 조금씩 익숙해져서 열심히 번 돈으로 머리도 자르고 새로운 기분과 분위기로 한 껏 들떠서 재미있게 일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2~30M정도 떨어진 곳에서 고함 소리가 들렸다. ‘싸움이 났나? 호주의 공장에서 싸움 구경이라~’ 하며 슬며시 그곳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그건 싸우는 소리가 아니었다.

 

어떤 백인 아저씨가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일을 하다가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바닥에 그대로 고꾸라진 것이다.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놀라서 비명을 지르는 소리였다. 그 아저씨는 몸을 부르르 떨며 헉헉대더니 순식간에 얼굴이 검푸르게 변해버렸다. 사람들이 인공호흡을 하고 심폐소생술을 해댔지만 아저씨는 입에서 오물을 쏟아내며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만 있었다.

 

10분도 안되어서 구급차가 오고 경찰차가 왔으나 그 아저씨는 결국 살아나지 못했다. 그대로 생을 마감한 것이었다.

엉거주춤 그 앞에 서있던 나는 몸이 굳어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친하게 지내던 아저씨는 아니었으나 가끔 만나면 인사는 하고 지냈던 사람이었다.  내생에 처음으로 누군가의 마지막을 눈앞에서 보았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모든 게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구급차가 왔을 때는 모두들 손을 모아 기도했다. 제발 잠시라도 살아나서 그의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게 해달라고... 그러나 하늘은 무심히도 그를 그 자리에서 데려가 버렸다.

그자리에 살아있는 사람들은 더 이상 일하지 못했으며, 공장은 3시가 넘어가는 시간에 모든 작업이 중지되었다. 사람들은 눈물을 닦으며 집으로 돌아갔고 집에 돌아가 혼자 있기 싫었던 나는 친구들을 만나러 시티로 향했다.

 

한동안 일하느라 바쁘다고 사람들과 만나지도 못했었다. 그러나 누군가의 죽음으로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되고 가족과 친구들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친구들은 여전히 놀라있는 나를 진정시켜 주었고 한국의 집에도 전화를 걸어 가족들이 항상 곁에 있음을 감사해 하며, 그래도 같이 사는 이승이 저승보다 더 나은 것 이란 말을 새삼 되뇌었다.

 

‘헛되이 보낸 나의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 이었다.’ 라는 누군가의 글귀가 생각난다.

지금 조금 더 사랑하고, 조금 더 베풀며, 조금 더 열심히 살아야 겠다.

 

일하던 양말가게

멜번의 한 공동묘지

초록의 나무와 멜번의 푸른 하늘~

삶이 아름다운 이유^^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