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 도착한 곳은 호주의 브리즈번이라는 퀸슬랜드의 도시이다.
퀸슬랜드주는 일년 내내 따뜻한 곳이기도 하며, 10월은 겨울을 지나 여름이 다가오는 계절이었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퀸슬랜드에 머무는 것은 따사로운 햇살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14일 아침 8시에 비행기에서 내린 나는 그 햇살을 뒤로한 체 2시간동안 공항 안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브리즈번 공항은 그리 크지 않다. 2시간 동안 볼 것이라고는 짐을 싸들고 어디론가 가려는 외국인 여행객들뿐이었다.
분명 한국인 여행자가 많을 거라고 예상한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내가 탄 비행기에 한국인이 아무도 없었거나 혹은 진작에 버스를 타고 공항을 떠났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동양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수 있겠는가?'’
그곳에 커다란 여행가방을 든 체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우둑하니 서있는 동양인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한국 여행객들은 여행사를 통해서 호주에 도착하기 때문에 현지 여행사에서 한국인 가이드가 마중을 나와 시티로 데려간다는 것이었다.
실로 이런 여행사를 거치는 것이 번거롭고 비싸기만 할 뿐이라고 생각한 나는 여행사에서 비행기표만 덜렁 사들고 나왔던 것이다.
사실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되었다. "시티로 가려면 어디서 버스를 타야하죠?"’
분명 여행자를 위한 영어 회화집에도 써있었다. 하지만 입으로 영어를 내뱉는 것이 '히말라야'
같은 산을 오르는 것만큼 힘들었다. 산을 오르며 숨이 가파 가슴이 뛰듯 심장은 잠시도 가만히 있질 않았다.
2시간이나 결심을 굳힌 후에 간신히 몇 마디 물어서 버스를 탔지만 아직도 그때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 분명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말은 거의 못하고 책을 들이대었을 것이다.
가이드북에 있는 지도를 가르키며 "What bus?" 라고 했던 것 같다. -.-“
버스를 타고 시티로 가면서 그 흔한 영어회화학원 문지방도 밟지 않고 기세좋게 영어권 국가로 날라 온 내 자신이 너무 어처구니없었다. 사실 고등학교에서도 내 영어성적은 늘 50점을 넘기가 어려웠었던 것이다.
창밖에 지나가는 이색적인 풍경을 바라볼 새도 없이 숙소에 묵기위해 해야 할 말을 연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이드북에 나온 숙소(backpackers-YHA)를 버스기사에게 보여줬지만 그가 말을 걸자 나는 다 왔다는 얘긴 줄 알고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를 보낸 후 지도랑 주변을 비교해 보니
한정거장이나 먼저 내린 것이었다. 아마도 그는 내가 맘이 바뀌어서 다른 숙소에 묵을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한숨을 내쉬며 무거운 가방을 끌고 10분 쯤 걸어가면서 말을 연습했다.
마침내 숙소에 도착했지만 역시 영어회화집을 내보였다.
직원이 "How long are you going to stay here?" 라고 하는 말도 제대로 못 알아들어 몇 번이고 되풀이 시킨 후에 겨우 "seven days" 라고 말하고는 달라는 돈을 다 주고는 드디어 숙소에 입실을 했다.
영어는 적극적인 사람들이 빨리 배운다고 한다.
하지만 게을리 한 공부에다가 소극적이기 까지 한 나는 침대에 앉아있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뿌듯했다.
그리고 적어도 7일 동안은 편히 누울 곳이 생겼다는데 행복함을 느꼈다.
내가 처음 묵은 곳은 '브리즈번 시티 백페커' 라는 곳이었다.
가이드북을 보고 무심코 선택한 곳이었는데 근처 숙소 중에서는 꽤나 깨끗한 곳이고 하루 숙박료가 20$(AUD-그 당시 환율은 1$당 약 800원) 정도였다. 나처럼 일주일치를 한번에 내면 몇 달러 정도 할인도 해준다. 중심가나 기차역에서는 좀 떨어져 있긴 하지만 조용한데다가 야경을 구경할 수 있는 운치있는 테라스가 있어서 좋다. 밤이면 테라스 옆 작은 bar에서 맥주를 팔고 운이 좋으면 포켓볼 대회나 야외공연도 즐길 수 있다.
처음만나는 호주로써는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 된다.
처음 2~3일은 정말 훌쩍 지나갔다. 시티 구경을 하고 강가와 공원도 가고, 박물관도 갔다.
한국과 사뭇 다른 모습에 신기해하며, 열심히도 돌아다녔다.
하지만 더 신기한건 시티가 아주 작다는 것이었다.
한국은 시티라고 부를 수 있는 영역이 정말 넓지 않은가?
주거지역도 정확히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상업건물과 높은 아파트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한국과는 달리, 브리즈번 시티라는 곳은 걸어서 다 돌아다닐 수 있을 만큼 작다.
게다가 주거지역으로 들어서면 전부 단독주택이나 나지막한 상가건물이 조금 있을 뿐이다.
면적이 한국의 40배에 달하며 인구는 한국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나라이니 새장처럼 칸칸이 그리고, 빼곡히 들어선 아파트는 필요가 없을 것이다.
새삼 작은 땅덩어리 안에서 조금 더 많은 땅덩어리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아옹다옹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조금 슬프게 느껴졌다.
이런저런 고국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온지 3일이 지났는데 아직 집에 전화도 한통 못한 것이 생각났다.
실은 어떻게 전화를 해야 하는지 잘 몰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동안 한국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전화하는 법도 알게 되었다.
'한두살 먹은 어린애도 아닌데 전화도 못걸다니...'
우습지만 전화기를 들어 영어로 흘러나오는 맨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결과이다.
전화박스를 찾아 집에 전화를 걸자 어머니가 갑자기 펑펑 우신다. 내가 연락이 없자
'말도 제대로 못하는 딸래미가 나쁜 호주사람한테 잡혀가서 한국에 못 오게 되는 건 아닌가..’
‘말을 못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셨더랜다. 황당하기도 하지만 충분히 이해할 만 하다.
앞뒤 계획이나 준비 없이, 더군다나 아는사람도 없이 단지 남의 나라 땅 밟아보겠다고 홀홀 단신으로 훌쩍 한국을 떠나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없는 딸을 둔 부모라면 당연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머니의 걱정과는 달리 뻔뻔하게도 계속 "Sorry?"를 외쳐서 말을 서너번씩 되풀이 시킨 후에나 이해를 하고, ‘'Please' 라는 말에 익숙하지 않은 예의없는 동양인에게 그들은 친절했다.
아마도 미안해하며 짓는 나의 미소 때문이었으리라. 세상 어디를 가나 웃는 얼굴엔 침을 못 뱉는다.
그리고 처음엔 대여섯번이나 되풀이 시켜야 했던 말도 한두번이면 대충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먹고, 자고, 물건을 사고, 입장료를 내고, 버스를 탈 수 있는 말을 하게 되면서 나의 호주여행은 점점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머문 시티백베커 테라스에서 찍은 사진
밤이라 좀 흔들렸지만 밤에 맥주한잔 들고 구경할 수 있는 멋진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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