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산과 그 친구.. 그리고 뒷모습의 디비아..
엉클과의 사진도 있었는데 못찾겠군요.. 그 사진을 찾을 수 있을까요?
새로 이사를 간 집에는 인도인만 3명이 살고 있었다.
한명은 집주인으로 컴퓨터 분야의 일을 하고 27살 이었으며 이름은 ‘디비아(Divia)’, 또 한명은 경비업체에서 일을 하는 30살의 ‘ 바산(Bassan)’ 이었다. 그리고 또 한명은‘바산’의 아버지로 나이는 55세쯤 되었으며 우리는 그를 ‘엉클(Uncle)’ 이라고 불렀다.
디비아’의 영어는 호주인과 비슷할 정도로 능숙했지만 장난기가 많고 심술궂었다. ‘
바산’ 역시 영어는 능숙했지만 인도인 특유의 굴리는 발음이 강해서 쉬운 말도 잘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말이 별로 없고 아주 온순한 성격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좋아했던 엉클 역시 굴리는 특유의 발음이 있었지만 최대한 정확히 말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알아듣기 좋았고 아주 신사적이었다.
아침에 가장 먼저 일어나는 사람은 ‘엉클’ 이었고, 우리가 일어났을 때쯤에는 깨끗하게 씻은 후에 로션을 바르고 인도의 전통 옷처럼 보이는 하얀 상의와 치마를 입고는 은은해서 듣기 좋은 인도 음악을 들으며 신문을 읽고 있었다.
가끔은 주방에서 인도식 카레를 만들거나 야채를 이용한 음식을 만들고 있기도 했다.
그리고는 늦게 일어나서 눈꼽 낀 얼굴로 주방에서 겨우 빵에 잼이나 바르고 있는 우리를 보면, 인도식 음식을 먹어 보겠냐며 자기가 만든 음식을 내어주거나 인도식 쨈을 주기도 했다.
인도에서 보험 계통에서 일을 했다는 그는 은퇴를 하고는 아들이 있는 호주로 여행을 온 것이었다.
한 달 후에 비워진다는 방이 바로 ‘엉클’이 쓰는 방이었다.
그는 낮에는 무엇을 하는지 늘 집에 없었고, 저녁때는 일찍 집에 와서 늘 양고기나 카레가 들어간 음식을 만들어 우리의 위장을 요동치게 하곤 했다.
한 집에 살지만 원칙적으로 음식 공유는 없었고, 다른 사람의 음식을 먹는 것은 규칙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늘 음식을 풍부하게 했고, 음식 만들기가 끝나고 식사를 시작할 때 우리가 있으면 늘 그가 만든 음식을 맛보게 해주었다.
사실 고소한 냄새만큼 맛있는 음식은 아니었지만, 호주에서 만나는 인도는 우리의 생활을 풍성하게 해주었다.
‘엉클’은 늘 음식을 손으로 먹었다. 내가 늘 그 모습을 신기해하며 바라보자 그는 웃으면서 손을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었고, 그렇게 먹는 방법도 배워 따라해 보았다. 그러면 그는 아주 재미있어 했다.
가끔 한국의 여러 가지 국물요리나 베트남 식의 월남쌈을 만들어 그에게 맛보여 주기도 했다.
그는 새로운 문화를 정중하게 받아들일 줄 알았으며, 늘 웃는 얼굴로 우리를 딸과 아들처럼 대해주었다.
한 달 뒤 그가 호주를 떠났을 때 우리는 정말 섭섭해 했고, 그의 명함과 주소를 받아들고는 꼭 인도로 찾아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나는 맥주를 좋아하는 ‘디비아’와 가끔 맥주를 마시며 영화(DVD)를 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가끔은 내 영어 선생이 되어 주기도 했다.
그러나 보통 때는 소탈하고 활달하지만 자주 심술궂게 행동하는 그와 뭔 말을 하는지 잘 알아들을 수 없었던 ‘바산’과
는 이 외에 그다지 큰 교류는 없었다.
어쨌거나 외국에 오더라도 책만 보고 말을 많이 하지 않으면, 영어는 절대 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국인 친구 하나도 없이 외국인 하고만 지내려고 하는 것도 그다지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다.
외국인과 아무리 잘 지내도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한국 친구가 없다면 외로워지기 마련이고, 이곳에 와서의 즐거움도 만끽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다.
그런 면에서 내가 새로 이사를 와서 살게 된 ‘Ascot vale'의 생활은 여러 면을 충족시켜 주었다고 할 수 있다.
한 방에서 어쩔 수 없이 살을 부대끼며 살아야 했던 J와 H가 있었고, 능숙한 영어로 늘 대화를 시도하고 가르쳐 주려했던 비슷한 나이의 ‘디비아’도 있었으며, 늘 베풀어 주려고 했던 ‘엉클’이 있었다.
그리고 영어도 잘 못하는 내가, 데굴데굴 구르는 소리로 말하는 ‘바산’의 말을 알아들으려고 노력했던 인내도 있었다.
새로 이사 온 집의 사람들은 모두 좋았으나 60평의 집에 6명이 사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화장실은 큰 문제였다.
단 하나밖에 없는 화장실과 샤워실을 가장먼저 차지하는 사람은 엉클’이었고 그와 시간이 겹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한방에서 살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늘 일어나는 시간이 비슷해진 우리는 샤워실 사용에 순서를 정해야 했고, 가끔 디비아와 바산이 늦게 출근이라도 하는 날이면 줄을 서야 할 지경이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시티까지 40분 이상을 달려가야 했기 때문에 조금 더 일찍 일어나려고 노력했고, 우리 셋 중에 가장 먼저 집을 떠나는 것도 나였기 때문에 그들에게 처음으로 샤워실 사용을 할 수 있게 배려 받았다. 가끔 디비아나 바산과 겹칠 때는 절대 양보 받지 못했지만 말이다.
자전거를 타고 40분 이상을 다니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이곳은 예전에 살던 곳처럼 평평한 길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쩔 땐 시티까지 가는데 한 시간이나 걸리곤 했다.
이때는 참 힘들었지만 꿋꿋하게 자전거로 다녔던 일을 건강으로 보답받았던 것 같다.
호주에서 병원을 간 적이 한번 있었지만 그땐 넘어져서 다쳤기 때문이었고 실제로 호주에서 생활하면서 감기조차도 걸려 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하루 2시간 이상씩의 꾸준한 자전거 타기 운동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얼마 후 H는 자동차 한대를 구입했다. 백펙커에 나있는 광고문을 보고는 여행온 독일인에게 샀다고 들었다.
차는 82년식의 아주 오래된 차였고 차의 기어도 핸들에 달려있었다.
사실 나도 혹시 몰라서 한국에서 국제 운전면허증을 발부받아 오긴 했었다. 그러나 후에 이 친구를 보고 용기를 얻어 한참 후이긴 하지만 나도 차를 한대 구입했다.
어쨌거나 내가 차를 구입한 이야기는 한참 뒤의 일이고, 그때 좀더 자세하게 이야기 하도록 하겠다.
H의 자동차는 시티를 갈 때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H의 차를 타고 먼 곳까지 자동차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자동차로 2시간이 걸리는 ‘발라렛(Ballarat)’이란 곳으로 여행을 가기로 하고 계획을 세웠다.
2003년 11월 30일 우리 셋과 브런즈윅에서 이사를 나올 때 우리를 도와주었던 두 명의 친구들을 포함하여 5명이서 발라렛에 있는 소버린 힐(Sovereign Hill)로 멜번에서의 첫 번째 여행을 떠났다.

엉클이 남긴 그의 인도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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